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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보여도 세계를 누비며 팔러다녀요_ 시각장애 사업가 1부
    김승월 2026-01-22 31
      다음글은 김승월의 브런치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실린 글입니다. RP환우 사업가의 이야기 입니다. 1부와 2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 백번 시도하면 두세번 성공해요 를 소개합니다. 

    “장애인은 장애보다 자기 아픈 걸 드러내는 걸 더 아파해요.”

    그는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장애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아픔이며 슬픔이라고 했다. 헬렌 켈러 조차
     자신의 장애가 감동의 상징으로만 다뤄지는 것을 불편해했던 걸 읽었다고도 했다.  가명을 쓰겠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겨우 인터뷰가 시작됐다.  시각장애인 사업가, 아리랑 디스플레이(가명) 이대인 사장(가명)이다.

    경기도 서울 인근에 있는 그의 사업장은 공장 겸 사무실이다. 100여 평 공간에서 8명이 일한다. 조립실과 자재실, 포장된 완제품이 쌓인 창고가 이어진다. 통로 한쪽 벽에는 10여 개 나라의 국기가 걸려 있다. 그는 이곳에서 제조하고, 수출한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해외 출장 다녔다가, 이 년 전부터는 서너 달에 한 번은 출장길에 오른다. 시각장애가 있어 혼자 다닐 수 없으니 직원과 동행한다. 동행한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공항 로비에 그냥 서있기도 했다.  출장지에서 잠은 따로 잔다. 한 번은 호텔 객실에서 물병을 깼다.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지만, 새벽이라 도움을 청하기가 미안했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움직였다가는 유리를 밟을 것 같았다. 뒷걸음쳐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아침까지 꼼짝하지 못했다.

    더 어려운 건 비즈니스다.
     “비즈니스는 자선사업이 아니잖아요. 시각장애라고 봐달라는 말은 체면이 안 서죠.”
    고객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소리에 의존해 분위기를 읽는다. 하지만 상대편이 몇 명 인지도 알 수가 없다.
     “축구 국가 대항전에서 눈 안 보이는 골키퍼한테 공격수가 ‘나 오른쪽에 있어’라고 말해주지는 않잖아요.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예요. 냉혹합니다.”

    유럽에서는 장애 자체를 존중 보호받아 우선권, 편의제공을 받는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역차별받으니 불평하는 이도 있단다.
    “'장애가 벼슬이냐?'라는 말도 듣습니다. 장애인과 사업하기를 꺼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장애인에 대한 태도와 서비스를 비교해서 물어보았다.
    “이제 한국도 공공 서비스는 엄청 좋아졌어요. 외국보다 좋은 점도 있는데, 장애인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은 덜 한듯해요.”

    그가 수출하는 건 디스플레이 구동 하드웨어와 이를 작동시키는 펌웨어(farmware)다. 고객 맞춤형으로 소량을 주문 생산한다. 주요 시장은 유럽과 미국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북유럽, 베네룩스 3국을 오간다. 코로나 이전에는 연 매출 60억 원대였지만, 지금은 유럽 경기 침체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고객과 대면해서 하는 상담에서 신뢰를 얻도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다. 
     “모든 서류를 완벽히 준비합니다. 통화로 신뢰를 쌓고, 샘플은 무상으로 먼저 보냅니다.”

    새 고객을 만드는 일은 늘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산고 産苦만큼 힘들다.
     “백 번 이상 시도해서 두세 건 성사되면 다행이죠. 거절당하면 이렇게 생각해요. ‘백 번 중 하나 지웠다. 아직 아흔아홉 번 남았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가 형편없는 반응을 듣고, 다시 반 바퀴를 돌아올 때도 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으니, 스스로 진정시킬 방법을 찾는다. 남이 안보는 곳에서 울거나, 교회에 가서 울면서 소리 지르며 기도드린다.
    “운이 없으면 운을 만들려고 해요. 계속 시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는 오늘도 한 곳에서 ‘거절'을 받았다. 남아 있는 아흔아홉 번 중 그다음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이나 거절당한다면, 우리는 그 아흔아홉 번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까.
    2부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