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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막색소 변성증으로 인한 시각장애인에게도 장애연금을 지급하라
    최정남 2015-06-30 2,001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김정민씨 

    망막색소변성증은 시각을 만드는 시세포가 유전자 변이에 의해 죽어가는 질환이다. 개그맨 이동우씨나 소녀시대 수영의 아버지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도 조금씩 망막색소변성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망막색소변성증을 일반적으로는 유전병이라고 알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전자 변이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즉 부모가 망막색소변성증이 없더라도 변이 유전자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돌발성 유전형 망막색소변성증은 전체 환자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시세포에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면 망막세포가 죽어가면서 10~20대의 비교적 어린 시절에는 주로 야맹증이 나타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시력저하와 시야협착이라는 특징적인 증상을 겪게 된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의 문을 두드린 김정민씨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거의 시력을 상실한 시각장애 2급 장애인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병이므로 장애연금을 줄 수 없다? 김정민씨는 2003년 처음 시각장애 3급으로 등록한 후에도 직장에서 계속 일해 왔다.  그러나 시력이 더욱 악화되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느끼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 즈음인 2014년에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연금을 신청했다.

    그런데 웬걸 국민연금공단은 김정민씨에게 장애연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김정민씨는 1999. 4. 1.에 국민연금에 가입한 이후 현재까지 성실하게 국민연금을 납부해왔고, 현재 시각장애 2급인 장애인인데 장애연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니, 어찌된 영문일까.

    국민연금공단은 김정민씨의 시각장애의 원인이 된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질환이고 병역신체검사를 받은 1992년 이미 이에 대한 진단이 있었으니, 국민연금에 가입한 1999년 이전부터 질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역시 일종의 보험제도로, 국민연금법에는 장애연금의 수급자격으로 장애의 원인이 된 질병이나 사고가 국민연금가입 후에 발생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김씨의 망막색소변성증은 이미 1992년에 진단되었으므로 질병이 이미 발생한 것으로 보아 장애연금 수급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김정민씨는 국민연금공단의 설명에 납득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가 발생할 것을 예견했든 하지 않았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입이 강제되어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납부해야 한다. 또 김정민씨는 자신이 이 질병을 알게 된 것은 시력저하를 느끼고 병원을 찾은 2003년경이고 그 전에는 밤눈이 어둡다 정도였지 안경도 쓰지 않고 생활해 왔다.

    그런데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될 것, 즉 보험사고가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연금에 가입했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지난 2014년 국민연금공단의 심사청구, 보건복지부의 재심사청구를 통해 장애연금 지급거부처분을 다시 심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답변은 한결같았다.

    김정민씨는 결국 국민연금공단의 처분에 대해 다투는 나홀로 소송을 하기에 이른다.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한 장애연금지급거부처분취소소송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지난 2014. 11. 26. 국민연금공단의 장애연금지급거부처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제도개선 방향을 짚어보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국민연금공단의 관행적인 처분이었다.

    이미 지난 2006년도에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들의 경우 질병발생 시기를 군 징병검사 등으로 인해 최초로 진단된 때가 아니라 실제 그 질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시력저하 및 시야협착이라는 증상이 나타날 때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6. 7. 28. 선고 2005두16918판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은 군 징병검사 시 유전질환에 대한 진단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연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처분을 되풀이해온 것이다.

    힘겹게 나홀로 소송을 해가던 김정민씨는 언론기사를 통해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장애연금관련 토론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필자는 김정민씨의 사건을 검토한 결과 승소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김정민씨의 소송을 대리했고, 결국 행정법원은 김정민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1992년 징병신체검사 당시에는 망막변성이 확인되기만 해도 병역이 면제되었다는 점, 따라서 병역이 면제되었다는 사실로 이미 질병이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 당시 측정된 나안시력 0.3, 0.2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시력이었다는 점, 국민연금에 가입한 1999년 이전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였는데 당시 2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교정시력 0.7 이상이었어야 했다는 점, 시력저하 등의 증상을 느끼고 병원에 내원한 2003년 이전에는 전혀 안과에서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었고, 시력이 더욱더 악화되기 시작한 2010년까지도 안과진료를 거의 받지 않았던 점 등을 볼 때 들어 원고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행정법원의 1심 판결은 국민연금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다.대법원 판례를 무시하는 잘못된 관행적 처분을 바로잡아야이로써 김정민씨는 40~50만 원 가량의 장애연금을 65세가 되어 국민연금을 받게 되기 전까지 지급받게 될 예정이다. 현재 40대 중반이니 거의 20년간 매월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김정민씨는 거부처분이 있었던 지난 2014. 4. 30.부터 1년 이상을 국민연금공단과 힘겹게 다투어 왔다.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가 있음에도, 국민연금공단은 유전질환이라는 이유로 장애연금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을 계속해왔고, 이러한 처분의 부당함을 판단하는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는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연금공단이 대법원 판례에 따른 처분을 하도록 각 지부에 지침을 내리고, 심사청구 및 재심사청구에서 만이라도 대법원 판례를 따라 그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면 김정민씨가 오랜 기간 몸 고생 마음 고생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받을 수 있는 장애인 연금이나 장애수당은 그 금액이 지나치게 적어 소득보장 기능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나마 국민연금법상 장애연금이 현행 제도 하에서 장애인의 소득보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영국, 독일 등의 선진국에서도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수급기회를 제공하고 연금 가입 전 장애이더라도 일정기간 이상 기여를 하면 장애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노령, 장애, 사망이라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유전질환으로 인해 장애를 입은 장애인들의 장애연금수급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